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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 인문학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본문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르칠 때가 많습니다. 예수를 믿고도 자신의 구원에 대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확신을 시켜주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행복을, 과연 구원의 확신을 가르칠 수 있는가? 반문해 봅니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구원에 관한 한, 이것은 사람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원한 행복과 관련하여, 구원과 관련하여, 개인은 내면 안에서 다루어야 할 자기 자신만을 가집니다. 누구도 이 문제에 관하여 끼어들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모국어로 그것도 무료로 말솜씨를 익힙니다. 얼마 후, 자동적으로 이런 저런 말하는 법을 배웁니다. 마치 이처럼, 구원에 관하여서도 이런 저런 많은 기독교적인 이야기들을 듣고 익숙해집니다. 그러다 어느날 구원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익힙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세상을 거부하는 법, 자기를 부인하는 법을 아무리 많이 듣고 배워도 그것이 과연 큰 유익인가? 아무리 이런 개념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이것이 우리에게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영원한 행복과 관계하고자 할 때, 그런 열정에 사로잡힐 때, 본질적이고 실존적인 이런 파토스가 생길 때, 오직 그때만 이 영원한 행복이 삶을 방해하는 요소, 삶에 해를 끼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만 세상을 진정 미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죠.
영원한 행복은 오늘날 시장 가격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안전입니다. 영원한 행복에 관하여, 존경받는 성직자들은 기껏해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미 유통기한이 끝난 채권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쨌든, 영원한 행복은 세상 어디에서도 거래될 수 없는 영원한 안전이죠.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가르쳐서 전달할 수 있을까요?
기만은 아주 쉽게 찾아 옵니다. 유한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 행복과 관련하여 어리석게 모험하지 않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크리스천의 삶이 사도를 닮아 영원한 행복과 관계할 때, 미친 놈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행복과 관련하에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개인은 다루어야 할 자기 자신만을 갖고 있고, 그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그를 불안정하게 하는 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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