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광운대 논술
- 숭실대 논술
- 숭실대 수시
- 시립대 수시
- 시립대 논술
- 경희대 논술
- 숙명여대 논술
- 한양대논술
- 카리스 인문학
- 인하대 수시
- 홍익대 논술
- 이화여대 논술
- 한양대수시
- 한국외대 수시
- 동국대 논술
- 카리스 아카데미
- 성균관대 수시
- 서울대 구술
- 광운대 수시
- 중앙대 수시
- 건국대 논술
- 건국대 수시
- 동국대 수시
- 키르케고르
- 성균관대 논술
- 이화여대 수시
- 숙명여대 수시
- 인하대 논술
- 중앙대 논술
- 소크라테스
- Today
- Total
카리스 인문학
1주차 2강 "소크라테스적 과업"으로서 키르케고르의 작품과 삶 본문
과정 소개
이 과정을 통해, 덴마크 사상가 쇠얀키르케고르가 상대주의와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탐구하게 될 것이다. 또한 현대의 삶에 전형적으로 나타난 의무의 부재, 종교적 믿음의 약화된
karis.tistory.com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와 무지
대부분의 <아이러니 개념>에서 관심의 중심 초점은 의심할 여지없이 소크라테스이다. 그러나 키르케고르가 이 철학자의 가르침을 연구한 것은 <아이러니 개념>에서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그의 삶을 통해 돌아온 소크라테스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키르케고르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에게는 무엇이 있었을까?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는 무엇을 의미할까?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에 고대 아테네에 살았고 그의 작품은 그의 제자 플라톤에 의해 대화 형식으로 기록되었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는 동료 아테네인들에 의해 기소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변명'라는 대화는 그의 재판에 대한 설명이고, '파이돈'라는 대화는 그가 처형된 마지막 몇 시간을 술로 마셨다는 내용이다. 소크라테스는 많은 시간을 도시 주변을 걸으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다. 그는 특정 지역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것에 대해 물었다. 무지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는 토론 파트너들에게 그들이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그에게 깨우쳐 달라고 간청했다. 따라서 그들과 대화를 시작하곤 했다.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로 알려진 것은 보통 소크라테스가 대화 상대에게 어떤 것을 설명하거나 어떤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게 할 때 이러한 대화의 시작에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것을 에우튀프론이라는 대화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제기된 혐의에 대해 재판을 받기 위해 아테네의 법원으로 간다. 그곳에서 그는 지인인 에우튀프론을 만난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며 법정에서 무슨 용무가 있는지 묻는다. 소크라테스가 놀랍게도, 에우튀프론은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고소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특히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이 매우 소중하고 시간적으로 존경 받는 가치였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더욱 그렇다.
소크라테스는 사랑과 존경 사이에서 아버지와 에우튀프론의 행동 사이에 분명한 모순을 즉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모순을 지적하는 대신, 그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고 에우튀프론이 이 문제에 대해 특별한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척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맙소사. 에우튀프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옳은지 알지 못할 걸세. 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길을 이미 상당히 나아간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말일세."([플라톤 전집 II], 천병희 역, (서울 도서출판 숲, 2019), '에우튀프론', 349쪽;4a-b)
이것은 그 속의 아이러니를 보지 못하는 에우튀프론의 귀에는 칭찬처럼 들린다. 그래서 그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제우스에게 맹세고, 그건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에우튀프론은 소크라테스에게 그가 사실 그런 것에 전문가이고 소크라테스는 이에 동의하는 것 같다고 계속해서 확신시켰다. 에우튀프론은 소크라테스가 내뱉는 모든 대답을 반박하는 데 지쳤버렸을 때, 갑자기 급한 약속이 있는 척 달려가는 대화 말미에도 소크라테스적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
에우튀프론이 떠나자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부터 경건함에 대해 뭔가 배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을 거의 야유를 퍼붓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에우튀프론의 가르침이 없다면 평생 동안 자신의 관점에 대한 무지 가운데 살 것이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에우튀프론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게 함으로써 그에게 배우고 싶어하는 척 에우튀프론에게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었다.
에우튀프론은 전문가라고 자처한 후에 그에게 대답하기를 거부한다면 바보처럼 보일 것이다. 아마도 에우튀프론과 같은 어떤 것에 대해 대단한 전문가라고 주장하지만, 비록 그들은 그 지식을 매우 자랑스러워 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깨달은 것은 사람들이 그들의 전문 지식을 칭찬할 때 이런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은 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소크라테스식 대화가 시작된다.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는 이 과정의 핵심 요소이다.
언뜻 보기에, 첫째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아이러니한 것처럼 보인다. 그 다음 토론은 그가 사실 이 주제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둘째, 에우튀프론이 뭔가를 알고 있거나 전문가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이러니한 것이다. 키르케고르는 19세기 자신의 덴마크 사회에서 에우튀프론과 같은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는 무지하지만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본 이후로 키르케고르는 아이러니에 매료되었다. 그는 소크라테스가 아이러니를 이용해 이 사람들을 미끼로 삼은 것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일단 그들이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실패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아포리아(Aporia)
아이러니 외에도 키르케고르를 위한 소크라테스식 대화의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포리아'라고 알려진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어인데, 이것은 단순히 막막하거나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과 그의 다른 대화 상대들을 대화 중에 무감각한 상태로 데려간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에게 경건함에 대해 정의해달라고 요청했고, 에우튀프론은 그것을 주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반대 심문에 따라 그런 정의들이 이것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더 나은 정의를 요구한다. 두 번째 정의, 세 번째 정의 등에서도 동일한 일이 발생하므로 결국 실제 정의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인내심을 잃고 그가 점점 더 어리석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에우튀프론은 갑자기 급한 약속이 있다고 주장하며 도망친다. 따라서 대화 자체는 경건함에 대한 정의가 합의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허하게 끝난다. 이러한 이유로, 이것은 플라톤의 시적인 대화 중 하나라고 한다. 그것은 검토 중인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결론 없이 끝나는 대화 중 하나이다.
보통, 철학적 논문이나 글을 쓸 때, 목표는 특정한 논지를 입증하고, 특정한 논점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절차는 매우 이례적인데, 그것은 아무것도 확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결과는 순전히 부정적이다. 독자들이 배운 것은 제안된 소수의 경건함에 대한 정의가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여전히 경건함이 무엇인지 모른다. 비판적 검토 과정에서는 어떤 긍정적인 정의도 살아남지 못했다.
이 절차는 키르케고르에게 상당히 끌리는 것들이었다. 그는 이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있는 부정성의 사상가를 보는 것을 즐겼다. 소크라테스의 목표는 어떤 긍정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앞에서 그가 본 것을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들이 불확실한 기초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오랜 견해를 재고하도록 하고 싶었다. <아이러니의 개념>이 있은 지 5년 후, 키르케고르는 그의 저널 JJ에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대한 이 특징을 언급한다.
“플라톤의 대화 중 몇 가지가 성과 없이 끝난다는 사실은 내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재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자나 청자를 자기 능동적으로 만들고, 따라서 결과가 아니라 침으로 끝난다. 이것은 즉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현대식 암기 학습 방법의 훌륭한 패러디이다. 현대식 암기 학습법은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독자에게 어떤 자기 능동성도 일깨우지 않고 단지 독자에게 암송을 하게 할 뿐이다.”(JJ:482)
키르케고르는 소크라테스가 단지 부정적인 일을 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념과 삶의 특정한 측면을 반성하고 재고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에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들에게 돈을 받고 레슨을 해주는 많은 수사학자들이 있었다. 이 인물들은 소피스트라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다른 분야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을 제공하고, 대중 연설, 논리적인 추론, 논쟁과 같은 유용한 기술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몇몇 변호사들처럼, 이 인물들은 그 당시에 말을 왜곡할 수 있고, 믿을 수 없거나 심지어 잘못된 입장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다는 다소 음습한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언어로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는 웅변가였다. 그들은 진실이라기보다는 논쟁에서 이기는 데 관심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종종 거리에서 젊은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아테네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소피스트들과 연관되었고, 그에 대해 비난받은 것 중 하나는 나약한 주장을 더 강하게 한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이것이 소피스트들이 주로 행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런 관련을 격렬하게 거부한다. 그는 소피스트들과 달리 자신이 아무것도 안다고 주장하지 않고 따라서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젊은이들은 단지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심문하는 것을 보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에 그의 토론을 듣기 위해 온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것도 가르치지 않는 반면, 소피스트들은 그들의 가르침에 따라 받는 수업료로 생활을 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어떤 종류의 수업료도 요구하지 않는다. 키르케고르는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과 논쟁을 벌이는 것을 주의 깊게 보았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코펜하겐에서 많은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들을 현대판 소피스트라고 여겼다.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고 주장했고, 교회에서의 그들의 지위에서 물질적으로 이익을 얻으면서 이것을 가르쳤다. 그들은 재정적인 안정과 함께 편안한 삶을 누리는 동안 키르케고르가 심각한 문제를 발견한 기독교의 버전을 가르쳤다. 따라서 키르케고르는 소크라테스의 방법에 영감을 받아 이러한 자기만족과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사람들을 깎아내리려고 했다.
소크라테스의 사명과 쇠파리(gadfly)
사람들을 심문하는 소크라테스의 절차는 특히 곤혹스러운 젊은이들 앞에서 소크라테스가 그들을 반박할 때 공개적으로 굴욕감을 느낀 많은 그의 동료 시민들을 화나게 했다. 그래서 그의 적들 중 일부는 그를 고소했고, 그는 재판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돌아다니며 왜 이런 식으로 동포들을 괴롭히는지 설명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델포이의 신탁소에 간 그의 친구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신탁소는 존경받는 종교 기관이었다. 아폴로가 그곳의 여사제들을 통해 말했다고 믿어졌다. 개인적인 문제나 더 큰 국가 문제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제안된 계획이 성공할지 신에게 물어보기 위해 신탁소를 방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소크라테스의 친구는 신에게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신은 아무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의 친구가 이것을 보고했을 때, 소크라테스는 그가 특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대답에 당황했다. 실제로, 그는 많은 다른 것들에 대해 자신보다 훨씬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돌아다닐 때, 그들 각자는 에우튀프론처럼 행동했다. 어떤 일에 있어서 대단한 전문가인 척했지만, 결국 소크라테스의 질문 후에 그들은 전혀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 후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적어도 자신이 모른다는 점에서 그가 더 현명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소크라테스의 지식은 생각이나 활동의 구체적인 영역에 대한 어떤 긍정적인 지식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지식이었다.
역설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지식은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신성한 사명이 주어졌고 아테네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지식 주장을 시험하는 것이 그의 종교적 의무라고 믿게 되었다. 이것이 그가 배심원들에게 왜 그가 그렇게 행동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행동에 대한 비유로 쇠파리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쇠파리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끊임없이 윙윙거리며 말을 타고 여기저기서 내려앉아 말을 짜증나게 한다.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께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 쇠파리의 역할을 하라고 이 나라에 꼭 붙여놓으시고는,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 앞에 꼭 붙여서 종일 끊임없이 설득하고 책망하여 정신이 번쩍 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소크라테스의 변명》, 박문재 역 (파주: 현대지성, 2021), 39쪽, 31a)
그는 "나는 신이 나를 도시에 붙였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정착하는 모든 곳에서 하루 종일 당신을 자극하고 설득하며 당신 한 사람 한 사람을 책망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아테네의 집게벌레로 묘사하며, 비록 짜증스럽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안일함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지식에 대한 그들의 주장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그들을 경계하게 하는 유익한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그의 작품을 종교적 소명으로 간주한다. 그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심문하는 것을 좋아하거나 개인적으로 그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을 신의 명령을 따르는 것으로 본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의 종교적 의무이다. 이것은 키르케고르가 좋아했던 이미지였고, 소크라테스와 같은 것이 자신의 과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사실상 코펜하겐의 쇠파리가 되어 동포들이 자만심에 빠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인문학 강좌 > 키르케고르 및 주관성, 아이러니의 개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주차 3강 소크라테스, 키르케고르, 헤겔 (0) | 2022.06.06 |
---|---|
2주차 2강: 키르케고르, 마르텐센 그리고 헤겔주의 (0) | 2022.06.06 |
1주차 3강 "소크라테스적 과업"으로서 키르케고르의 작품과 삶 (0) | 2022.06.02 |
1주차 1강 "소크라테스적 과업"으로서 키르케고르의 작품과 삶 (0) | 2022.05.31 |
2주차 1강: 소크라테스와 마르텐센, 그리고 헤겔주의 (0) | 2022.04.15 |